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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역사

덕수궁은 세조의 손자 성종(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른 후 월산대군이 남아 살던 집이었다.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피난갔다가 환도하니 도성 안의 궁궐이 전소되어 이곳을 행궁으로 삼고 16년을 거처하였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하여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경운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운궁이 다시 궁궐의 역할을 하게 된 시기는 1895년 을미사변에 이은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이다. 1896년 고종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가 경운궁의 전각을 증축하고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국이 되자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이 되었다. 1905년의 을사늑약에 이어 1907년 일제에 의한 강제 양위로 순종이 왕이 되자 경운궁을 떠나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Deoksugung Palace

Deoksugung was the house where Prince Wolsan lived after King Seongjong (Jaeulsan-gun), the grandson of King Sejo, ascended to the throne. When King Seonjo returned to the palace after the refugee because of Imjin war, the palaces in the city were burnt down. So, he stayed here, a temporary palace, for 16 years. After Gwanghaegun ascended the throne and moved to Changdeokgung, it was called Gyeongungung.
Gyeongungung Palace came to play the role of a palace after the Eulmi Incident in 1895. In a politically unstable situation, King Gojong left Gyeongbokgung Palace and took refuge in the Russian legation.
In 1897, the name of the country was changed to the Korean Empire, and Deoksugung became the Imperial Palace of the Korean Empire. Following the Eulsa Treaty in 1905 and the forced abdication by the Japanese in 1907, when Sunjong became the king, he left Gyeongungung and moved to Changdeokgung, and the name of Gyeongungung was changed to Deoksug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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